[취재수첩] '처벌 만능주의' 허상에 최악 킬러규제 된 중대재해법

입력 2024-01-26 17:47   수정 2024-01-27 00:47

“야당 정치인 가족 중에는 중소기업인이나 소상공인이 없는 건가요. 이런 악법의 덫에 걸려 회사가 문 닫으면 우리 직원 식구들은 누가 책임집니까.”(인천 남동공단 A사 대표)

중대재해처벌법 확대 적용을 2년 유예하는 법률 개정안이 끝내 국회 문턱을 넘지 못했다. 국회 다수당인 더불어민주당이 총선을 앞두고 노동계 표를 의식해 확대 시행을 밀어붙였다는 분석이다. 이에 따라 당장 27일부터 새로 법 적용을 받는 5인 이상 50인 미만 사업장은 83만7120개에 이른다.

시행 유예 법안 처리가 무산됐다는 소식을 접한 영세 중소기업인들의 입에서는 과격한 단어가 쏟아져나왔다. 고물가·고금리 등으로 경영 환경이 악화한 가운데 중대재해법 공포까지 더해지면서 그야말로 업계 전체가 집단 패닉에 빠진 모습이다.

부산 송정동에서 소규모 건설회사를 운영하는 B대표는 “중소기업 대표들이 모이는 오찬 자리에서 꼭 등장하는 단어가 ‘폐업’”이라고 푸념했다. 이어 “세금 문제 때문에 자녀 가업 승계 여부도 몇 년째 고민하는 판인데 중대재해법 부담까지 얹히니 더 이상 사업을 이어갈 이유가 없단 생각이 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50인 미만 영세 기업이 그동안 중대재해법 적용 유예를 호소해온 건 법 취지에 반대해서가 아니다. 명확한 가이드라인과 제대로 된 준비가 없는 상태에서 중대재해가 발생할 경우 회사 대표는 구속을 면치 못한다. 1인 다역을 하는 대표의 공백이 장기화하면 사실상 폐업 상태가 될 수밖에 없다. 지난달 한국경영자총협회가 50인 미만 사업장 1053곳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94% 사업장이 ‘중대법 적용 준비가 완료되지 않았다’고 답했다. 중소기업계에서 나오는 줄폐업·연쇄 도산 우려가 반드시 엄살만은 아닌 이유다.

처벌을 강화한다고 사고 예방 효과가 눈에 띄게 늘어나는 것도 아니다. 중대재해법을 먼저 적용한 50인 이상 사업장의 사례가 이를 증명한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중대재해법 시행 첫해인 2022년 50인 이상 사업장에서 256명의 사망자가 발생했다. 전년(248명)보다 오히려 3.2% 늘어난 수치다.

중대재해법은 법률 전문가 사이에서도 법치주의 근간인 예측·이행 가능성을 결여한 악법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처벌 만능주의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국회가 정치적 이해득실을 잣대 삼아 반죽한 법이니 이런 비판이 나오는 건 어쩌면 당연하다. 모호한 규정에 따른 현장 혼란, 처벌 공포는 고스란히 중소기업이 떠안아야 할 몫이다. “중대재해법 적용 자체가 중대재해”라고 말한 한 중소기업 대표의 힘없는 목소리가 귓가를 맴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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